자신의 몸을 소중히 하지 않았던 것

유산을 어떻게 할까 결정하지 않았던 것

꿈을 실현할 수 없었던 것

맛있는 것을 먹지 않았던 것

마음에 남는 연애를 하지 않았던 것

결혼을 하지 않았던 것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았던 것

악행에 손 댄 일


감정에 좌지우지돼 일생을 보내 버린 것

자신을 제일이라고 믿고 살아 온 것

생애 마지막에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것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마워요’라고 말하지 않았던 것


가고 싶은 장소를 여행하지 않았던 것


고향에 찾아가지 않았던 것


취미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던 것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않았던 것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았던 것


사람에게 불친절하게 대했던 것


아이를 결혼시키지 않았던 것


죽음을 불행하다고 생각한 것


남겨진 시간을 소중히 보내지 않았던 것


자신이 산 증거를 남기지 않았던 것


종교를 몰랐던 것


자신의 장례식을 준비하지 않았던 것


담배를 끊지 않았던 것


=================================================



죽음


죽음이 나에게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른다는 것




항상 기억하면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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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좀 더 진실하게 바라보려고 노력할 때마다 발견하게 되는 것은 모순, 허세, 토사물 같은 것이다
나이테가 늘어나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생김에 따라 혀놀림이 조심스러워진다
적어도 나에게는 진실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기에
그렇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며
모순덩어리임을 자백할 수밖에 없다
언행이 일치하며 사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초등학교 때부터 배웠는데
너무나도 쉽게 배운 진리는 천박한 수준에서밖에 깨우치지 못하는 인간의 더러운 습성이다
정말 같잖은 것으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대단한 것인 것마냥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어느 순간 커졌다는 것을 느낄 때 좌절했다
내가 왜 이런 인간이 됐지
허세일 뿐이다
그저 종이쪼가리일 뿐인 것에
어깨에 힘을 빼자
뭣도 아니다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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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핑계대면서 못 하는 것은 나중에 나이 먹어서도 절대 못한다
살면서 나이 먹으면서 점점 몸으로 다가오는 이 느낌은 이미 나를 앞서간 사람들의 증언과도 대충 맞아떨어진다

지금은 잠시 이걸 하다가 나중에 내 꿈을 이루겠어
나중에 내가 기반이 잡히면 그 때
지금은 돈이 별로 없어서... 나중에 돈을 좀 벌게 되면 그 때 좋은 일 많이 하겠어

이딴거 다 개구라라능
나중에? 지랄...
지금 못하면 나중엔 더 못한다
처자식 딸리고 점점 책임질 것이 많아지고 목구녕이 포도청이 되는 현실 앞에서 보다 책임질 것이 적고 보다 홀가분한 지금 못하는 것을 과연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지금 못하는건 나이 먹어서도 못한다
꿈을 이루려면 지금부터 그 꿈을 향해 한 발자국이라도 다가서야 하고
좋은 일을 하려면 지금부터 단돈 천원씩이라도 아껴서 작게라도 해야 한다
날 기다려줄 만큼 세상은 녹록치 않다

인생의 종착지는 모두 똑같다
죽음
그렇기에 과정이 중요하다
과정
내가 지금 살아 숨쉬는 이 순간
지금 내가 무얼하고 있느냐가 나를 대변한다
현실 위에 서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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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은 좀 봐야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7/17/2009071701057.html


'선박들의 무덤' 방글라데시 치타공 현장 르포

"1982 년에는 6000t짜리 배를 부수는 데 1년3개월이 걸렸어. 그런데 1992년에는 4만t짜리 배를 6개월 만에 끝내버렸어. 어떤 때는 2만t 배를 23일 만에 흔적도 없이 없애버린 적도 있지. 근데 말이야,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 이 뻘밭이 피바다가 됐었으니까…."

툭 던지듯 한 노동자가 말했다. 2008년 1월 처음 본 방글라데시 치타공 해변은 참혹했다. 이 해안에는 30여개의 선박 해체소가 있다. 거기서 2만여명의 노동자들이 맨손으로 매년 200여척의 대형선박을 감쪽같이 해치운다. '선박들의 무덤'이다.

KBS 5부작 다큐멘터리 '인간의 땅' 2편 치타공 취재를 위해 2007년 여름 이곳에 왔을 때는 사업장에 접근도 하지 못했다. 제작팀은 세계적인 다큐 사진가 레자(Reza Deghati)를 만났다. 레자가 방글라데시 출신 사진가 오미에게 부탁했고 그가 선박해체소 사장 모신에게 사정한 뒤에야 겨우 현장에 가볼 수 있었다.

사진가 오미는 말했다. "10여년 전만 해도 일하다 죽은 이가 있으면 그냥 바다에 버리면 됐어요." 우리도 그 노동자들처럼 될 뻔했다. 높이 10m, 무게 20t은 족히 나갈 철덩어리가 배 위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찍는데 쇠덩어리의 충격으로 튀어오른 엄청난 진흙더미가 덮친 것이다.

현장 작업반장들이 난리를 쳤다. "그 철덩이를 간신히 앞쪽으로 당겼다" "당신들 쪽으로 떨어졌더라면 진흙밭에서 뼈도 못 추렸을 거다. 진짜 죽고 싶은 거야? 응?" 그랬다. 이곳은 배들의 무덤이지만 살아있는 자들의 무덤이기도 한 까닭이다.

방글라데시 치타공 노동자들이 선박해체 작업을 위해 뻘밭을 지나 유령선 같은 폐선박으로 향하고 있다. / 박봉남씨 제공


더 럽고 위험한 일을 해도 노동자들은 찡그리지 않았다. 순진한 그들은 카메라만 대면 웃었다. 하루 1~2달러를 벌기 위해 온몸으로 거대한 폐선을 뚜벅뚜벅 잘라낸다. 오염되지 않은 프롤레타리아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싫어하는 존재가 있었다. 그린피스 또는 국제환경단체다.

어느 때인가 그린피스가 싱가포르에서 치타공으로 가는 폐선 한 척을 잡고 시위를 했다. 그린피스는 지금도 치타공의 폐선해체 산업이 야기하는 심각한 환경오염을 이슈화하고 있다. 따져보자. 대형선박은 통상 20년이 지나면 노후해서 보험을 받아주려고 하지 않는다.

방법은 두 가지다. 타이타닉처럼 바다에 빠뜨리든가 아시아의 변방에 있는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넘기든가. 놀랍게도 치타공의 선박해체소에 온 폐선들은 완벽하게 해체되어 100% 재활용된다. 철은 잘라서 제련소로 보내고, 선박용 엔진은 소중히 뜯어내 공장에서 사용한다.

더러운 변기와 세면기는 깨끗이 닦아서 도매상에게 넘긴다. 목재, 낡은 전선은 물론 전구 한 알까지 빼낸다. 폐유도 소중히 모아서는 새 기름에다 섞어서 판다. 폐기된 선박에서 버리는 것은 딱 한 가지다. 화장실에 있는 사람의 똥밖에 없다.

재작년 옆 사업장에서 가스폭발로 7명이 한꺼번에 죽어나갔다. 누구는 철판을 나르다가 발목이 잘렸다. 누구는 옆에서 튀어나온 앵글에 뇌가 관통됐다. 누구는 배 위를 걷다 귀신에 홀린 듯 허공에 붕 뜨더니 진흙밭에 처박혔다. 이런 수많은 비밀 이야기들이 그곳에 있다.

취재팀의 촬영기간에도 옆 사업장에서 장기르라는 젊은 청년이 죽어나갔다. 그 집에 갔을 때 형수의 첫마디가 이랬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먹고 살라고, 우리는 이제 다 굶어죽게 됐어요…." 사람 목숨보다 한 끼 밥이 절박한 곳이 이곳이다. 이들에게 폐선은 재앙이 아니라 허기진 배를 채워 주기 위해 '바다와 알라가 보내준 선물'이다.

에끄라믈, 12살 막내, 무거운 쇠줄을 끄는 이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방글라데시에서도 가장 찢어지게 가난한 북부의 쿠리그람이 고향인 녀석은 3개월 전 엄마 몰래 도망쳐 이곳에 왔다. "힘들어도 여기서 일해야 해요, 고향에 먹을 게 없어요."

치타공의 까마귀들은 철로 둥지를 짓는다(사진 가운데). 치타공 노동자들은 목숨을 걸고 일을 하지만 하루에 1달러밖에 받지 못한다. / 박봉남씨 제공
이 아이들은 폐유와 석면덩이가 널브러진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맨발로 일하고 까불고 먹는다. 발바닥이 쩍쩍 갈라지고 목에는 시커먼 쇳가루가 박혀도 상관없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세 끼 밥이니까. 점심시간, 아이들이 손으로 밥을 먹는다.

시 커먼 때가 낀 세숫대야 같은 데서 밥을 퍼서 진짜 더러운 밥그릇에 밥과 절인 야채 몇 개를 놓고 기름 묻은 손으로 밥을 떠먹는다. 아!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단 말인가. 이 대목에서 나는 내레이션을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 배를 곯아본 이들은 안다. 세상에 더러운 밥은 없으며 맛있는 밥만 있다는 것을….' 얼마 후 휴일, 이 친구들 숙소에서 촬영을 하고 있는데 접시에 더러운 밥을 가득 덜어주더니 먹으란다. 활짝 웃으며 말이다. 거절하면 서운하겠지…. 먹기 시작했다.

아! 켜켜이 쌓인 접시의 때가 자꾸 눈에 밟히더니 손으로 집을 때마다 기분나쁘게 미끈거리는 카레국물, 손으로 밥을 집어넣을 때마다 손가락을 입에 집어넣어야 하는 고역, 옆에서 맛있다고 손가락 국물까지 쪽쪽 빨아먹는 소리들…. 결국 나는 절반 이상을 먹지 못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촬영감독은 쌀 한톨까지 다 빨아먹는 게 아닌가. 여기서 밝혀야겠다. 촬영감독 이름은 서연택이다. 훌륭한 사람이다. 그 뒤 내 말은 다시 바뀌었다. '세상에 더러운 밥은 없다, 하지만 먹기 힘든 밥은 있다.'

21 살의 선박해체공 벨랄, 이 친구 참 순수한 웃음을 가졌다. 벌써 10년째 여기서 일하고 있다. 촬영 시작 2개월째 인 어느 날 벨랄이 절단작업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와장창 소리가 나며 엄청나게 큰 파이프가 벨랄 위쪽으로 떨어졌다.

파이프가 10㎝만 더 안쪽으로 떨어졌으면 이 친구는 그 현장에서 목이 꺾인 채 즉사했을 것이다. 이날 벨랄이 즉사했다면 약 100만원의 보상금을 받고 시신은 고향으로 보내졌을 것이다. 저녁을 준비하던 벨랄이 어느 날 속내를 털어놓았다.

"죽을 때까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세요. 당신들한테 처음 말하는 거예요. 사실 나 결혼했어요 할머니가 강제로 장가보냈어요. 난 아직 아빠가 될 나이가 안됐잖아요? 그런데 지난 주 목요일 애가 태어났대요. 딸이래요. 두 눈이 안 보인대요. 아내에게 좋은 음식을 못 먹여서 영양실조로 그렇게 된거예요. 제 탓이에요…."

우리는 2008년 봄 3개월, 가을 20일, 2009년 봄 10일을 치타공에서 보냈다. 유난히도 까마귀가 많은 곳이었다. 까마귀들은 자꾸 철사줄을 물어갔다. 왜? 노동자들이 이렇게 말했다. '로하깍'. 벵갈어로 로하는 철, 깍은 까마귀이니 철까마귀인 게다.

철사로 지은 둥지가 안락하지 않다는 것을 까마귀인들 왜 모르겠는가. 까마귀 부부는 우리가 철수를 하기 며칠 전 약간 파란 색깔을 띤 알 4개를 낳았다. 비자 연장이 더 안 돼 알을 깐 새끼 까마귀를 찍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치타공에서 우리는 벨랄의 고향 방문에 동행했다. 시력을 잃은 채 태어난 딸을 안아든 벨랄은 울었다. 그립던 아내와의 짧은 해후를 뒤로 하고 벨랄은 다시 치타공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혼자 있는 방에서 펑펑 울음을 쏟아낸다. 우리도 마음이 시려왔다.

1년 후, 그곳을 다시 찾았을 때 벨랄은 여전히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5만다카, 우리 돈 80만원을 모아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던 벨랄의 꿈은 10년째인 지금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가능할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 선한 웃음의 젊은 노동자도 이제는 그것을 알지 모른다.

얼마 전 방송 준비를 마친 내게 방글라데시 현지 통역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벨랄이 전화를 했어요. 딸이 죽었다고, 돈이 없어서 치료도 한번 못해보고 그렇게 죽었다고 말하면서 막 울어요."

가난은 슬프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철까마귀들도 철사로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데 하물며 사람인 바에야. 치타공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노동자들의 알몸이었다. 노동으로 단련된 근육, 어깨에 깊게 파인 상처들, 검게 이글거리는 피부. 단 한 사람도 군살이 없었다.

그 경이로운 육체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것이야말로 한 시대를 만들어냈던 빛나는 노동이었다고. 그 노동의 기억을 되살리는데 기여했다면 행복할 것 같다. 그들의 선한 웃음이 그립다.

박봉남·독립PD



나의 형제들이 하루에 1달러 벌겠다고 사선을 넘나들며 폐선 쪼가리를 뜯어내고 있다
아무런 보호장구를 착용하지도 못한 채
하루 세 끼 밥을 먹기 위해
내 아이가
내 딸이 죽어가는데 손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보낸다

뭐냐 도대체...
이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이란 생각해 볼 여유조차 없는 사치일 뿐이다

요새 1달러로 할 수 있는게 뭐 있기나 한가...
요샌 과자 하나 사먹지도 못할 돈인데...


이 사람들이 내 형제고 내 이웃인데
괴롭다

제48회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 인터뷰


올해 48회 사법시험 최종합격자가 발표되었다. 수석의 영광은 2차 시험 평균 62.07점으로 합격한 박정은(26, 서울대 법학과 졸)씨에게 돌아갔다. 최고령 합격자는 김재용(46, 전남대 철학과 졸업)씨, 최연소는 최승호(21, 연세대 법학과 4학년 재학)씨로 밝혀졌다.

수석과 최고령, 최연소 합격자는 그 이력도 남달랐다. 수석 합격자 박정은씨는 서울대 법대 99학번 동기들이 사법시험 준비에 열을 올리던 4학년 무렵 법대 학생회장으로 활약했고 민주노동당의 당원으로 민주노동당 관악을 지구당 대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런 활동이 자신의 가치관과 소신을 세우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박정은 수석합격자는 “2차 합격 전까지도 시험을 망쳤다는 생각에 안절부절 못했다”며 수석합격은 예상치도 못했고 지금도 당황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합격소감

박정은
(이하 박): 우선 기쁩니다. 붙여만 주면 고맙겠다고 생각했는데, 수석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당황스럽고, 감사하고, 기쁩니다. 한편으로는 부담도 되고.

-앞으로의 진로

박정은: 궁극적으로는 여성문제를 중심으로 여러 부분의 사회적 평등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다만 법대에 가면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사실 성적이 다행히 허락했으니 가능한 것이었고, 자연스럽게 그 안에 상상력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던 한계가 있었지만..) 대학입시를 치렀고, 그래서 대학 때 무작정 시험공부를 하기는 겁이 났었습니다. 그래서 학교 다니면서 이것저것 해보며 많은 사람들 도움으로 겨우 내 생각이란걸 갖게 됐는데, 그나마도 서울대 법대 나온 사람의 상상력의 한계가 이거라 이 길을 택하게 됐습니다. 앞으로는 이 자리에서, 내가 선택한 길에서 열심히 해서 내 생각들을 실천해보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연수원 성적이 허락한다면 판사 일을 해보고 싶고, 그 후에는 공부를 좀 더 한 후 사회단체 등에서 일해보고 싶습니다.


민노당, 사법고시 합격당원 축하

| 기사입력 2006-12-01 14:17 | 최종수정 2006-12-01 14:17


【서울=뉴시스】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는 1일 여의도 당사 대표실에서 사법고시에서 합격한 박정은 씨 등 당원 3명을 초청해 격려했다.

문 대표는 이 자리에서 "여기 오신 분들 뿐 아니라 많은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이번 시험에서 합격했다고 들었다"면서 "당원들의 합격은 개인은 물론 당의 경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또 "최근 사법고시 면접과정에서 질문내용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그것이야 말로 사법부 내 보수적 질서의 균열을 반증하는 것"이라면서 "여기 계신 분들 중에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도 나오고 특히 노동법원장 같은 자리는 꼭 맡아야 한다"고 격려했다.

권영길 원내대표도 이들과 만나 "당의 위상을 드높인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면서 "열심히 해서 앞으로 사법부의 개혁에 앞장 서 주시길 바란다"고 축하를 전했다.

이 번 사법고시에서 수석합격한 박정은(28) 씨는 "지난 2002년 권영길 의원이 경희대에서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었을 때 무대로 꽃다발을 들고 나간 일이 있었다"고 소개하면서 "당원으로 열심히 활동했다고 받는 꽃다발이면 모르겠는데 이런 일로 받는 것이 망설였졌는데 '민주노동당 말만 많지 실력은 없다'는 말을 듣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화답했다.

이날 자리에는 박 씨를 비롯 노회찬 의원실 보좌관인 신민영씨(26), 단병호 의원의 딸인 단정려씨(25) 가 참석했으며 문성현 대표로부터 꽃다발과 자필 축하엽서를 선물로 받았다.

우은식기자 eswoo@newsis.com




사시·연수원 엘리트들, 잇따라 태평양 行

[머니투데이 문병선 기자][M&A 자문 등 태평양 위상 강화]


법무법인 태평양이 사법고시 수석 합격자와 사법연수원 수석 졸업자를 동시에 채용하게 됐다. 이들이 업계 최고로 알려진 김앤장을 택하지 않고 태평양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법조계에 미묘한 반향을 주고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 관계자는 6일 “박정은 씨(26, 여)와 김병필 씨가 오는 2월부터 출근한다"며 "각각 사법시험 수석합격자와 사법연수원 수석졸업 예정자”라고 밝혔다.

박정은 씨는 지난 2006년 치러진 제48회 사법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한 재원이다.분당 서현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사법연수원 38기다.

김병필 씨 역시 38기로 박정은 씨와 연수원 동기다. 자세한 인적 사항은 알려지지 않았다. 사법연수원 관계자는 “교수회의에서 수석 졸업 여부를 7일 오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점자가 있어 최종 결정이 늦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평양은 이들 2명과 군법무관 등을 포함, 총 30명의 신입 변호사를 채용할 계획이다. 신입 변호사들은 약 5년간 순환근무를 한 뒤 법인 비용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

태평양의 위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는 게 이번 채용을 바라보는 법조계 시각이다. 특히 연수원에서 상위권 성적의 졸업 예정자들이 잇따라 태평양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Y법무법인 관계자는 “국내 로펌 1위인 김앤장법률사무소를 택하지 않고 법무법인 태평양을 선택한 사실 자체가 의미가 있다”며 “법무법인 태평양의 위상 변화를 말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S법무법인 관계자는 “태평양이 M&A 자문 등 금융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어서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2008년 더벨 M&A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법무법인 태평양은 지난해 대한통운, 홈에버, 하이마트, 수페리어에섹스 등 완료기준 24건, 총 12조8739억원 규모의 M&A 법률자문을 맡으며 2위에 올랐다.

[관련기사]




김규항님 블로그 구독 중에 재미있는 블로그를 하나 알게 됐다
뉴욕펑크님의 블로그...

강남좌파의 길
말로 떠들고 겉 멋 들었던 학생이 현실로 들어서는순간 가치관과 판단 기준이 어떻게 바뀌는가
씁쓸한 맛이 입가에 맴돈다

버트란드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우리 저명하신 조박사님이 추천해주고 책 빌려줘서 3장 정도까지 읽었는데,
한 반 쯤은 이해를 하겠고 반 쯤은 이해를 못하겠다
책이 너무 어렵다
공돌이의 한계인가 -_-
이해한 내용의 반쯤은 동감하고 반쯤은 기대보다 논리가 빈약한 느낌이라 실망했다

아무튼 이 책은 지금의 내 한계를 넘어서는 책인 듯하여... 패스 -_-
나중에 좀 더 레베루 업 한 다음에 읽어봐야지


**

근데 요새는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 기독교인이 많아지는 것과 이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건 별 상관관계가 없는 것 같다고
오히려 요즘 정권 모습을 보면 오히려 기독교가 득세할 때 세상은 더 추악해지는 것 같다
우리 나라가 무슨 신정일치국가던가
요즘 세상에 목사가 청와대 들어가서 정치에 개입하질 않나
아주 가관이다
우리 나라가 무슨 이란이냐..
예전 부시 전 대통령의 몇몇 망발을 들어도 그릇된 세계관을 가진 기독교 맹신자들은 오히려 세상을 더 악하게 만든다는 생각
비단 요즘 뿐만 아니라 역사를 돌아보아도 로마 중세 시대 때 기독교가 사회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었을 때 사회의 모습은 아름답지 못했다

어렸을 때 내가 꿈꾸었던 그런 이상향과 현실과의 괴리감이 너무나도 크다
이미 내 신앙관은 지금 한국 기독교의 주류와는 좀 다른... 어쩌면 이단으로 분류될지도 모르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 나라 기독교의 모습은 참 징글맞다


**

러셀은 잠시 내려놓고 씨알 함석헌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

최근에 네이버에서 연재를 시작한 하일권의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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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병맛에 재미있다 ㅎㅎㅎ




내 평생에 가장 심장이 벌렁벌렁 벌렁거려 하던 때를 생각해보면,, 몇 가지 떠오른다
그 중에
가장 기분 좋게
희망과 기대와 부푼 가슴과 벌렁거림의 절정은
열 아홉 겨울 나 홀로 미국으로 날랐을 때였다

두 살때 미국에서 살았다지만 기억이 날리 없고...
사실상 처음으로 미국으로 가던 때였다
게다가 나 혼자 떠나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그 설레는 마음
공항에서 출국 수속 절차를 밟는 순간부터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처음 발을 내딛던 순간,
그 긴 통로를 따라 쭈욱 걷던 그 길 내내
내 심장은 소리가 들릴 정도로 쿵쾅거렸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나한테는 새로운 것이었고 처음 밟는 땅이었고 도전이었다
열네시간의 비행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저 새롭고 신기하고 즐거웠다
외국인들과 내가 영어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눈이 마주쳤을 때 지어주는 작은 미소 하나, 전혀 모르는 사람임에도 문을 열고 내가 지나가도록 배려해주는 작은 친절 하나, 모든 것이 새로운 충격이었다


백팩에 크로스로 맨 지갑 가방에 한 손에 캐리어까지 든 채로 그 긴 통로를 쭉 걸어갔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많은 기억들이 소실되었음에도 이 때만큼은 정말 강렬하게 인상에 남아있다
공항에서 처음 만난 맥도날드에서 미국에서 영어로 주문해서 초코 선데를 사먹은 기억도 난다
여직원이 계산을 잘못해서 거스름돈을 적게 줘서 가다 말고 다시 돌아서서 영수증 들고 따져서 거스름돈 마저 받아내고 뿌듯해 했던 것도
역시 산수는, 계산은 한국인이 더 잘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던 것도

그 두어 달간의 여행은 아마 내 평생 가장 심하게 심장이 뛰었던 가장 길었던 기간이 아니었을까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 때의 그 처음이라는 긴장감, 순수했던 마음과 열정...
열 아홉만의 특권이었을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즘도
그 때만큼은 아니지만
조금씩 가슴이 뛴다
즐겁다는걸까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왜 너의 좋은 능력을 그렇게 제한하고 가두고 썩히려 드냐고
그것만 하기엔 시간 아깝다고
그렇지만 새로 시작하는 이 일들이
나에겐 나름 즐겁고 신선한 일들이며








즐겁다




한 발짝 한 발짝 어떻게 되어갈지 모르는 이 기분이
마냥 행복하고 들뜨지는 않지만,

즐겁다


아직은 괜찮다
좀 더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봐도

고작 스물 여섯이니까 ㅎㅎㅎ



이 두근거림과 긴장과 자극을 따라 살다보면 그 끝은 어디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계속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도...

아직은 돈을 좇으며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지만 아직 인생의 쓰린 맛을 덜봐서 그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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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 사유
http://mogibul.egloos.com/4153105

아시다시피 DJ 는 다리를 전다. 1971년 교통사고가 나서 그렇게 된 것인데 항간의 소문으로는 박정희가 DJ 를 죽이려고 그런 것이라고 하는데... 심증은 있으나 확증은 없다. 여하거나. 그래서 DJ 는 그 후 수십년을 지팡이를 짚고서 민주화투쟁을 해왔다. 그는 1973년 일본에서 납치되어 죽을 뻔 하였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김형욱 회고록에는 이것이 당시 중앙정보부 작품이라고 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980 년 신군부에 의해 재판에 회부되어 내란음모혐의로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고 형집행이 정지되어 미국으로 망명한다. 바로 이 내란음모사건은 2004년에 와서야 비로소 무죄로 확정되었다. 물증은 없으나 심증으로는 확실히 박정희는 최소한 두번 DJ 를 죽이려고 시도하였다. 바로 그 박정희의 딸이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이 확실시되는 2009년 현재, DJ 는 어떤 심경일까. 목숨을 걸고 평생을 바쳐 이룩한 민주주의와 남북평화가 산산히 부서지는 광경을 지켜보아야 하는 그의 심정은 과연 어떨까. 이곳에 앉아서도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그의 가슴에서 나는 탄내가 느껴진다.

한국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보려면 DJ 의 걸어온 길을 보아라.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운동에 관련하여 자기 나름의 기억과 업적을 갖고 있으나 DJ 는 민주화운동 그 자체라고 보면 된다. DJ 가 바로 민주화운동의 역사이다. 그러나 그런 DJ 조차 자신에게 걸린 내란음모사건의 무죄확정을 받아내는데 저토록 오랜 세월이 걸렸다. 만일 2002년 선거에서 당선된 것이 노무현이 아니었다면 저마저도 어렵지 않았을까. DJ 와 노무현은 서로 은원이 있겠으나 이 건만 두고 본다면 노무현이 DJ 의 은인인 셈이다.

DJ 는 1925년 생으로 되어 있으므로 현재 호적상 나이는 84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1923년 생이라고 하므로 실제나이는 86세가 된다. 최근에는 건강이 나빠져서 며칠걸러 투석을 해야 한다고 하고 잘 걷지도 못하여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그런 그가 휠체어에서 일어나 떨리는 다리로 조문을 하는 광경은 그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았다.

DJ 의 다리는 민주화운동에 대한 참혹한 박해의 상징이다. 절뚝거리는 다리로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다가 연로하여 휠체어에 앉고 만 DJ 가 다시 일어섰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조화를 바치기 위해서. 두다리 성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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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양숙 여사와 악수를 하며 결국 울음을 터뜨리는 dj를 보면 많은 생각이 들게 된다
조문을 하러 그 부들거리는 다리로 걷는 모습을 볼 때는 내가 다 조마조마했다
평생 민주화 동지를 잃었다...는 그의 말
기불이의 말맞다나 dj의 인생은 민주화 그 자체였다
울고 있는 dj

우리 나라의 민주화는 이러한 단계...


영결식은 끝났다
이제 슬퍼만 할 시간은 지났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한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아무 것도 아닌 나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겸손하리라 마음먹고 살아오긴 했으나
그래도 조금씩 에리고 추운 것들 보니 내가 지금 추운만큼 그것들을 의지했었으리라

스물 여섯 스물 여섯 이십육 26262626
발가벗겨지고 어른이 되어가는 나이
내가 아무 것도 아님을 알고 바닥부터 빌딩해나가야 하는 시기
거품을 걷어내고 옷을 다시 하나씩 만들어서 입어나가야 할 시기

그래도 정권이형이 미리 예고를 해줘서 다행이다
마음의 준비를 조금은 해둘 수 있었다
하이튼 형들이 좋다


아무튼,
어디 한 번 시작해보자고

웃자
주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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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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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놔 진짜 인생 살다보니 참 별 뭣 같이 그지같은 일들도 다 일어난다 싶다
근성의 스물 여섯
우오오오
씨발 ㅎㅎㅎ
욕 끊었었는데 몇 달 전부터 다시 새어나오고 있다
-_-
쪼까 승질난다
이럴 때 허허허 웃어 넘기는게 1류 대인배라는데
아직 2% 부족하다

이제 어린 아이로, 학생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레테의 강을 건넜다는 것만은 확실한거 같다



주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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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62251&no=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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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가장 큰 적이 있다
내 머리가 나의 한계를 정해서 그어놓았고 내 마음이 나를 작게 만들었다

뚫어서 날려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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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이 누군가에게는
새로 나오는 벤츠 S 클래스 사기가 좀 애매하다 싶은 느낌이고
리스가 이제 끝나서 내 명의로 두 세대 정도 차를 끌고 다니기엔 그만큼 세금 내기가 싫은 감도 있고
부동산을 좀 더 굴리기에 살짝 벅찬 감이 있는 정도의 말이다

내 돈 주고는 별로 먹기 싫은, 밥보다 더 비싼 만삼천원짜리 스무디를 마시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려니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또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하는데
마누라 차가 제네시스로 바뀌어 있더이다


얼마 전의 일이다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도대체가 세상이 역겹다

있는 사람들은 저런 말들을 하고 있고
없는 사람들은 저런 말들을 하고 싶어서 없는 돈 끌어 모아다가 자기 자식들 사교육에 매달 수백만원씩 쏟아 붇고
그나마도 없는 사람들은 절망과 체념과 푸념 속에 살아가며
정부는 경기부양이라는 기치 아래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조장한다


진짜 구역질이 난 것은 무엇이었냐면 난 그런 말을 들으며 어떻게든 그 사람들에게서 돈을 받아내야만 했던 상황이었다
결국은 더러운 돈과 나 자신에 대한 구역질이었다


한 젊은 부자가 예수에게 다가와 말한다. “선생님, 제가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는 부자에게 대답한다. “가진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세요.” 얼굴을 붉히며 되돌아가는 부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예수는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쉽습니다.” 예수의 말은 짐짓 지나치게 느껴진다. 모든 부자가 다 악랄하고 탐욕스럽기만 하진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 예수의 말은 지나침이 없다. 하느님 앞에선 누구든 차별 없이 귀하다. 빈부 격차는 그 자체로 악이다. 그런데 빈부 격차란 왜 생기는가? 고루 나눠 갖지 않기 때문에, 남보다 많이 가진 사람이 존재하기에 생긴다. 하느님 앞에서 부자는 ‘가난한 사람이 존재하는 한’ 죄인인 것이다.
 



김규항 선생의 글의 일부이다

그래도 정상적으로 끼니 거르지 않으며 문화 생활을 즐기며 살고 싶은 정도의 부자가 되고 싶은 내 마음에 부담이 된다
이 역겨움을 잊고 싶지 않다
어느 순간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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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민은행과 사회적 기업에 대하여

'가난 없는 세상을 위하여 (Creating a World Without Poverty)'를 읽고

 

책에 나와있는 문구를 그대로 옮긴 문장도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빈곤은 평화에의 위협입니다

 

2006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 무하마드 유누스가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한 유명한 말이다. 빈곤이 어떻게 평화에의 위협이 될까? 세계의 소득분배 현황에서 그 시사점을 찾아볼 수 있다. 전세계 소득의 94%가 세계 인구의 40%에게 돌아가고 나머지 6%만으로 60%가 살아가고 있다. 세계 인구의 절반은 하루 2달러의 돈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그 중 10억 명 이상이 하루에 1달러 미만으로 연명한다. 역으로 물어본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인권이란 것이 존재하고 평화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수많은 범법행위와 테러행위가 가난에 기인한다. 이 말이 마음에 잘 와 닿지 않는 이유는, 적어도 이 포스팅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전세계 소득의 94%를 소비하는 사람에 속하기 때문이다.

 

 

무하마드 유누스는 최빈국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 태생이다. 그는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다가 고국으로 돌아와 가난에 허덕이는 자국민들을 보고 가만 있을 수가 없어서 조그맣게 돕기 시작하다가 1983년 그라민 은행을 세우며 마이크로크레딧을 통해 본격적으로 빈곤 퇴치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그의 조그만 실험으로 시작했던 이 운동은 20여 년이 지난 현재 마이크로크레딧 혁명을 일으키며 큰 성공을 거두며 시스템도 계속해서 발전해나가고 있다. 전세계적 마이크로크레딧 서밋을 개최하며 1억 가구 이상의 빈곤층 가정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며, 그라민 은행과 5년 이상 거래한 고객들 중 64%가 빈곤선에서 벗어났다. 이 때 빈곤선의 기준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유누스는 왜 빈곤층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그는 말한다. 빈곤에 둘러싸여 있어서 그것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 있었다고. 그는 귀국 후 열심히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을 보았고, 그 이유가 고리대금업을 하는 사채꾼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42명의 채무자가 고작 27달러가 채 안 되는 돈 때문에 묶여있었단 것이다. 그는 자신의 돈으로 그 빚을 갚아주었다. 흔히 빈민 구제에는 수십억의 돈이 필요하다고 믿는데 비해 그 40여 명의 사람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적은 돈으로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났다. 이 것이 유누스가 마이크로크레딧 운동을 시작하고 그라민 은행을 설립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은행은 신용이 없는 사람에게는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수입이 없는 학생은 신용카드를 만들 수 없고, 신용카드의 한도를 늘리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심사절차가 필요하다. 돈을 빌리려면 담보가 있거나 안정적인 수입원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한 마디로 돈을 빌려주면 갚을 수 있는지 꼼꼼하게 체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담보할 것도 없고 돈도 없는 빈곤층에게 은행은 무엇일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관계 없는 기관일 뿐이다.

 

마이크로크레딧이란, 이른 바 '신용'이 없는 빈곤층에게 무담보로 소액의 돈을 대출해주는 금융서비스를 말한다. 대출자들은 이 소액의 돈으로 생계를 위한 활동을 한다. 재료를 사서 손재주로 물건을 만들기도 하고 조그만 사업을 하는 등의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기 위한 일을 해가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라민은행이 절대적으로 빈곤한 그 대출자들로부터 99% 이상의 자금 회수율을 보였다는 점이다. 대출자들은 각자 그 돈으로 어떻게든 생계를 꾸려나가는 활동을 해서 돈을 벌고 대출한 돈을 갚았고 그렇게 그라민의 첫 실험은 성공을 거두었다. 현재 그라민은행은 700만 명이 넘는 빈곤층에게 돈을 빌려주는데, 그 중 97%는 여성이다. 이 성공은 가히 혁명적인 것이다. 이것은 대출을 받으려면 반드시 담보가 있어야 한다는 전통적인 믿음에 대한 거부이다.

 

유누스는 그라민은행의 마이크로크레딧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빈곤층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을 이미 알고 있다. 단지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들을 교육 대상이 아닌, 자립적인 경제 단위로 보는 발상의 전환이 중요하다. 그들이 역량을 발휘할 여건을 마련해주면 그들은 창의성을 발휘하여 어떻게든 살아남게 된다. 빈곤층에게 적선이나 지원금이 아닌, 다시 갚아야 하는 대출금을 제공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은 '사회적 기업'이다. 기본적인 개념은 이것이다. 사회적 기업 일반적인 기업과 같이 영리 활동을 하는데, 빈곤층에게 사회적 혜택을 제공하는 사업을 하는 기업이다. 이 회사의 투자자들은 기업의 영리활동을 통해 투자원금 회수한다. 하지만 그 이후의 회사의 초과 수익금은 투자자에 대한 배당금으로 돌아가지 않고, 사회의 공익을 위해 재투자 되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을 수 있는데, 첫째는 빈곤층에게 사회적 혜택을 제공하는 사업을 하는 기업이 있을 수 있고, 둘째는 사업 영역이 빈곤층을 향하지는 않지만 지분을 빈곤층이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기업이 있을 수 있다. 생각해보면 간단한 개념인데, 이 간단한 개념이 사회를 크게 바꿀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세계적으로 부호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수억 원씩, 수십억 원씩 기부를 한다. 이렇게 해서 운영되는 재단은 기부금이 없으면 돌아갈 수가 없고, 돈이 다 떨어지면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다. 그리고 자금이 투명하게 혹은 기업보다 효율적으로 쓰이지 않는다는 단점들도 있다. 게다가 돈을 다 쓰면 끝이다.

 

하지만 사회적 기업은 그렇지 않다. 사회적 기업에 투자를 하면, 기업은 영리 활동을 통해 자생력을 갖게 되고 투자자는 투자한 원금을 회수하게 된다. 이 돈은 또 다른 사회 공익을 위한 사업을 하는 사회적 기업을 세우는데 투자할 수 있는 것이다. 수백억 원씩 기부를 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다면, '투자'를 하는 덜 미친 사람들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천박한 자본주의가 판치는 세상에 현실성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아이디어는 기업가가 영리만을 추구하는 1차원적 인간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다면적인 존재이며,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보다 낫게 만드는 데에도 관심을 갖고 일을 할 수 있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의가 있는 젊은이들은 이런 곳에 도전할 동기가 충분하다.

 

 

그라민은행과 마이크로크레딧, 그리고 사회적기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은 이 세계에서 빈곤이라는 질병을 퇴치하자는 데에 있다. 그 옛날 페스트라는 질병이 유럽을 휩쓸며 수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이제는 사라진 병이 된 것 같이, 빈곤이라는 질병이 온 세계를 휩쓸고 있지만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하자는 것이다. 빈곤은 자연적으로 빈곤층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조성된 것이다. 그렇기에 빈곤을 없애는 일 또한 인간들이 신경을 쓰고 힘을 쓸 때 가능해진다.

 

나는 이러한 유누스의 생각이 전적으로 동의하고 나도 이 흐름에 작은 힘을 보태고 싶다. 빈곤층에 대한 관심과 제도적 정비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국가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사회적 기업이란 모델을 통해서 접근하여 보다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에도 이러한 모델이 많이 알려지고 정착되면 보다 많은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기대된다.

 

빈곤을 박물관으로.

그의 또 다른 캐치 프레이즈이다. 이 세상에 빈곤의 종말이 오기를 힘쓰고 또한 기대한다.

며칠 전,
한남오거리에서부터 6211번 버스를 타기 위해 약 100미터 남짓, 못 잡을꺼 같다 생각하면서도 숨이 턱까지 찰 정도로 달리면서, 결국 잡아타면서 알았다
교회에서 ㅆㅂㅆㅂ거리면서 욕 한 바가지 늘어놓고 집에 돌아와서 알았다
아침에 온 문자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사26:3)
를 보고 알았다


2009년은,


근성


이다


속에서 할 말이 쏟아져 나오고
욕이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고
고함을 지르고 싶어도
뒤집어 엎고 싶어도
끝까지 꾹꾹 눌러 담겠다
징징대지 않겠다
일하다 힘들 때 술보다 친구보다 주님을 먼저 찾겠다

근성있게 살겠다, 2009년
끝까지..
그 끝... 어디까지 가나 한 번 보자

스물 여섯,
내가 정말 잘 훈련받았다면, 이제 조금씩이라도 풍겨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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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님의 글을 보면, 제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평소에 진지하게 고민해보았으나 사고의 깊이의 짧음으로 인해 답을 얻을 수 없었던 주제에 대한 통찰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주변 어른들에게 듣고 배우고 싶었지만 듣지 못해서 가려웠던 부분을 속시원하게 긁어주고 있는 느낌입니다.
무언가 가르침을 받으려면 마땅히 선생님을 찾아가서 여쭙는 것이 예의에 맞겠으나, 선생님도 매우 바쁘신 것 같고, 현실적인 제약이 있어서, 웹의 힘을 빌려리고자 합니다. 혹시나 김규항님이 이 트랙백을 보시면 짧게나마 대답을 해주시면 참 감사할 것 같습니다.



(중략) ..... 하느님을 사랑하는 건 나를 사랑하는 일이자 동시에 모든 나를 사랑하는 일이다. 그래서 예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자선이나 적선은 실은 예수가 말한 이웃 사랑과는 다르다. 나와 내 식구가 충분히 먹고살면서 여력이 되는 대로 불쌍한 사람을 돕는 것은 끝없이 더 가지려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사람들에 비추어 선량한 행동임에 틀림없지만 예수가 말한 이웃 사랑은 아니다. 돈을 많이 벌어 그 돈으로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생각 역시 예수가 말한 이웃 사랑은 아니다. 예수가 말한 이웃 사랑은 예수의 말 그대로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와 남, 내 것과 남의 것을 경계 지어 이루어지는 행위가 아니라 나와 남, 내 것과 남의 것의 경계를 없애는 것이다. 내 것의 일부를 이웃에게 주는 게 아니라 '내 것'을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후략)



저는 지난 번에 올리신 글 중에서 이부분이 가장 크게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바로 어제 명동거리의 구세군 자선냄비에 천원짜리 한 장을 넣으면서도 생각했던 것입니다.
과연 내가 가진 돈의 일부, 그 중에서도 극히 일부를 나누는 것이 저 분들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들을만한 행동이었나.. 말이죠.
예수님은 '인자의 머리 둘 곳이 없는' 삶을 사시고 세리와 창녀와 죄인들의 친구의 삶을 살았는데, 나의 삶은 어떠한가.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를 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는 내가 원하면 이렇게 추운 겨울에도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고, 개운할 수 있다는 사실에, 누구를 향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으나,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를 향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제 삶 속에서 제 이상과의 괴리감을 느낍니다. 스스로가 위선적이라고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 근본이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위에서 김규항님께서 말씀하신,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예수의 사랑이 내게 없는 것이 그 근원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현실적으로 제가 부딛혔던 이야기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재작년 초겨울, Z 브랜드 샵에서 빨간색 이쁜 목폴라 니트를 보았고,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충동적으로 구매를 했습니다. 15만원이었습니다. 부양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을 버는 직장인이어서, 그게 그렇게 저에게 큰 부담이 되는 돈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옷에 꽤 큰 돈을 들인 셈이었습니다. 약간 마음에 걸리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저는 DSLR 카메라를 가지고 있고, 사진 찍는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월급을 펀드에 한 1년 동안 열심히 부었더니 작년 가을쯤에 대박이 되어있더군요. 떨어지기 전에 다 털어버리고 수익금의 일부로 좀 더 비싸고 좋은 기종으로 업그레이드를 했죠. 기분이 참 좋더라고요. 그 때 주변에 아는 한 형이 제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의 그 '좋아함'으로 인해 너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배제될 수 있는 사람들을 한 번 생각해보라는.. 그런 비스무레한 이야기를 했는데,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생각은 들었습니다.

위에 말씀드린 두 가지 일이, 저의 돈관리와 소비생활에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기준이 세워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다 뿐이지, 뭔가 확실한 변화가 생겼다든가..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문제는 문제인건지, 무엇이 달라져야 할 것인지.. 확실하게 알지 못하기에 말입니다.(아... 이 빈곤한 철학...)


그렇습니다. 저는 현실적인 기준이 어떤 것이 되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 경제생활에 대한 현실적인 기준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할까. 돈이 많이 드는 카메라 취미는 버리는 것인 맞는건지, 15만원짜리 폴라티를 산 것은 정말 사치였는지... 쓰고 보니 이 무슨, 10대가 쓰는 글도 아니고 왜 이리 유치한지... 쪽팔립니다만, 이런 것에 대해 어떤 가치관을 가져야 할지 정확히 배우지 못했다는 편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 목사님, 선생님, 주변 어른들과 형들... 글쎄요, 네 믿음과 신앙에 거리낌이 없다면, 네 자신에게 솔직해졌을 때 거리낌이 없다면 괜찮다. 라는 정도의 말이 지금까지 제가 들어왔던 말의 전부입니다. 이 얼마나 애매모호한 말입니까.
엄마랑 싸워서 아우디 A6에 기름 넣을 돈이 없다고 절망에 빠진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의 기준은 무엇이 될까요.
나는 과연 20년 뒤에 내 자식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을 해보면... 깝깝합니다.
제가 너무 오버하는건가요? 하지만 저한테는 참 헷갈리는 말입니다. 정말 맞는건지 확신도 잘 안오구요.
물론, 구체적인 기준이 되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어떤, 눈에 보이는 기준이 있다면, 하나의 율법이 되어 바리새인과 같은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 기준만 넘으면 난 선하다... 라는 착각 같은 것 말이죠.


그래서 결국은, 모르겠다. 라는 결론에 빠지게 된 것 같습니다.
김규항님이 말씀하신, '내 것과 남의 것의 경계를 지우는 것'이 예수의 이웃사랑의 핵심이라는 것은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의 소유에 대한 지나친 소비로 인한, 자연스러운 이웃에 대한 배제에 대한 문제는 과연 어떻게 해결 될 수 있을지요..
나는 과연 그 경계를 지우고 살고 있는지 어떻게 스스로 알 수 있을까요.

지금은 잠시 학업 때문에 일을 쉬고 있어서 벌이가 없습니다만, 돈을 벌 때는 제가 위에 말한 소비.. 그 이상으로 기부도 하고 컴패션 같은 단체에 후원도 하고.. 주변에 어려운 친구에게 되돌려받지 못할 돈을 빌려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나눔에 망설임없이, 기꺼이 나누어 줄 수 있다면, 괜찮은걸까요?


쓰다보니 길어졌습니다.
그냥 가슴 속에 답답했던 것을 풀어낸 것 같네요.
저는 단지, 김규항님의 글에서 깊은 통찰들에 감탄을 했고, 선생님의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반가워서요.. 김규항님이라면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해서 여쭈게 되었습니다.
블로그를 보니까, '고래' 일을 하시는 것을 보니 후학들의 교육에 대한 열의도 있으신 것 같고 해서요.
한 말씀 나누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근데 트랙백 보시기는 하시나요? T.T)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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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아버지와의 추억 하나.


누구라도, 90년대 남학생들의 마음을 끓어올라 불타오르게 했던 단 하나의 로망을 꼽으라면 단연 NBA 스타 마이클 조던을 꼽을 것이다
그는 실로 농구의 신이었다
농구 잡지를 사고 NBA 카드를 모으면서 NBA 스타들을 흠모했고 그 중에 마이클 조던은 단연 최고였다
제 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시카고 불스, 그 빨간 유니폼을 입은 마이클 조던 앞에서는 개좁밥...
양쪽에 피펜과 로드맨을 끼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짓던 그 얼굴은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중학교 때는 정말 매일 쉬는시간, 점심시간, 방과 후 시간에 친구들과 운동장 모래 먼지를 날리며 농구를 하면서 조던 같이 덩크를 하려고 몇 번이나 폼을 잡고 날아올랐는지 모른다
하지만 조던 같이 덩크가 될 턱이 있나
원인 분석을 해봤다
농구화가 안좋은거다 -_-.... (어릴 때부터 장비 탓...)

그.래.서.
난 에어조던 농구화가 사고 싶어졌다...
그 때는 진짜 한창 유행했다
농구 좀 한다 싶으면 다들 한 이름하는 농구화를 신고 다녔다

근데, 우리 엄마가 어떤 위인이냐,
어렸을 땐 소변 두 번 봐야 변기 물 내리게 하고, 밥이나 반찬 남기는 꼴은 절대 두 눈 뜨고 못 보고.. 암튼 근검절약의 화신 -_-...
옷이나 신발 같은거, 절대 메이커 못 사게 했다
다 사치, 돈 낭비 라고...
난 에어조던 농구화가 진짜 사고 싶었다
몇 번 엄마한테 졸랐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

그러던 어느 날, 장충체육관에서 나이키 인기 품목 세일을 한다는 전단지를 허름한 벽에 붙어 있는 것을 발견
흥분했다
.........
나만 흥분했다 엄마는 그래봤자 비싼거 사줄리가..


세일 마지막 날....
침울하던 나에게 아버지 등장
아직도 기억난다...
그 더운 여름 날...
차 엄청 막히던 퇴계로...
장충체육관에 어찌저찌 도착하여...
내 발 사이즈는 한 켤레 남아있던 에어 조던 시리즈 농구화...
그걸 떡하니 사주던 아버지는 그야말로 나의 구세주

이건 엄마한테는 삼촌이 사줬다고 하는거다~
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의 영웅, 마이클 조던이 덩크하는 심볼 새겨진 농구화
그걸 사준 나의 영웅,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가 좀 짱임 ㅋㅋ


그 뿐만이 아니다
중3때는 친구들과 함께 3 on 3 길거리 농구 대회에 참가했다
토요일이었는데, 나는 서울대로 영재교육인가 뭐시기를 가야했다
하루만 빠지겠다고 하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마 라던 엄마... -_-....
아놔 그거 한 번 빠진다고 뭐 세상이 뒤집히냐고
아부지 SOS 요청
교육 받던 도중에 날 빼내기 위해 서울대까지 날라온 우리 아버지
엄청나게 밟으면서 결국은 시간 내에 경기장까지 도착하게 해주셨다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하이튼,
우리 아버지가 좀 짱임 ㅋㅋ



그 농구화는 사실 별로 좋은 것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신발 틈이 벌어져서 비가 오면 물이 다 새서 양말이 다 젖을 때까지도 버리지 않고 신었다
그 에어조던 농구화는,,
아버지의 응원과 격려, 그리고 사랑이었다
다른 친구 농구화 보면서 부러워하고 있던 나에게 주던 아버지의 자신감이라는 선물
그럴 듯한 농구화가 있어야지만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나도 못난이었지만, 어릴 때였으니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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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남자는 갑바가 생명이라고,
남자라면 가슴울 쭉 펴고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살라고,
절대 기죽으면 안된다고,
항상 가르치셨던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땐 참 소심하고 키만 컸지 맥아리도 없던 아들래미, 참 많이 바뀌었다
운동 열심히 해서 갑바도 키우고
마음의 갑바도 키우고
지금 내가 자신감 넘치고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은 아버지가 나에게 남겨준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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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는 나보다 작고
배도 나오고
팔씨름도 내가 적당히 봐줘야 하지만,
나에겐 큰 산과 같은 존재

http://www.soyoyoo.com/archives/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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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군수 조병갑을 아는가? 동학농민혁명의 근원지였던 고부의 그 유명한 탐관오리 조병갑. 그는 만석보를 쌓으면서 그 일을 한 농민과 일꾼들에게 품삯을 주지 않고, 그 만석보의 물을 이용하는 농민들에게 엄청난 수세를 거두었다. 농민들은 일년 내내 일을 하고도 가난에 허덕이며 끼니 걱정을 하는데도 그들은 무지막지한 세금을 거두어 갔다. 묵은 황무지를 백성들에게 무상으로 갈아 먹으라고 해놓고는 추수 때가 되면 또 세금을 거두어갔다. 조병갑 애비의 공덕비를 세우겠다고 세금을 거두고, 대동미를 거두면 그 쌀을 하품으로 우겨서 그 이익을 몽땅 챙겼다.

조선시대 내놓으라하는 탐관오리가 어디 조병갑 뿐이었던가. 양반들은 세금도 면제였고, 군역도 면제였다. 오로지 힘없는 백성들만이 임금과 나라를 위해 일을 하고, 세금을 내고, 군역의 의무를 다했다. 한마디로 양반을 제외한 백성들만이 봉이었다. 동학농민혁명처럼 때때로 그 폭정에 항거하여 민란을 일으켜보기도 했지만, 엄청난 탄압을 받고 역적으로 몰려 참수되기 일쑤였다. 그것이 우리네 백성들이 살던 고단한 삶이었다.

“백성들만이 봉”인 그 유구한 전통은 봉건제가 사라지고 민주공화국이 들어서고도 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서민의 아들들은 예외없이 군대를 가야했고, 1원이라도 탈세를 했다가는 국세청의 조사를 받아야했다. 주류 특권층들은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군역을 피했고, 설령 탈세가 걸려 법의 심판을 받았다해도 금방 사면복권되었다.

그 유구한 전통에 딱 한 번 금이 간 적이 있었는데, 2005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3년전 쯤 참여정부가 종부세를 만들었을 때였다. 우리나라 부유층 상위 2% 정도에 종합부동산세를 물린 것이다. 난리가 났다. 백성 수탈이라는 수천 년의 전통을 자랑하던 이 땅에 처음으로 잘사는 사람들은 세금을 더 내라고 하니, 주류들은 꼭지가 돌았다. 수구신문들은 연일 세금폭탄이라고 맞섰고, 위헌이니 뭐니 지랄을 했다. 집 한채도 없는 어리석은 백성들은 종부세 대상자도 아니면서 세금폭탄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주류들은 종부세 대상자가 서민이라고 우겨댔다.

참여정부의 임기가 끝나고 정권이 바뀌자 이들은 종부세를 폐지하기 위해 안달했다. 국방의 의무도 다하지 않은 자가, 수백억의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 의료보험료를 만몇천원 내던 자가, 위장전입을 밥먹듯이 하던 자가, 자식들 위장취업을 시켰던 자가 대통령이 되자 대놓고 종부세를 없애겠다고 공헌했다. 종부세가 폐지되면 그 대통령이라는 자는 공직자 중에서 가장 많은 종부세 감면 혜택을 본단다.

이것이 반만년 역사를 가졌다는 한반도에 있는 아주 조그마한 나라, 대한민국의 특권 주류층의 모습이다. 세금폭탄, 징벌적 과세, 위헌을 운운하며 “단 한 명이라도 피해를 입으면 바로잡는 것”이 시장경제체제에서 심판의 할 일이란다. 단 한 명이라도 피해를 입으면 바로잡겠단다. 그리고 종부세 폐지로 줄어든 세수는 재산세를 올려 공평 과세할 것이란다. 참으로 자비롭고 공정한 대통령 아닌가, 2% 특권층 주류들에게는.

“그래, 세금은 원래 아랫것들, 상것들이나 내던 거였으니까” 이렇게 자위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을 밖에. 예수가 왜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신지 알 것도 같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그런 부자들이 다 예수를 믿고 장로가 되고 교인이 된단다.

참으로 아스트랄한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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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믿는 예수와의 괴리감
이 분노를 어떻게 창조적 에너지로 돌릴 수 있을까...


유명 인사라는 것은 아는데, 사실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_-;;
그래서 블로그에 올라오는 포스팅을 통해서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김규항씨.
이 분 글들을 보면 생각하게 되는 것도 많아지고 가슴을 탁 치는 글들도 있다
이하는 김규항씨 블로그에서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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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건 알지만 현실이..” 라는 말이 지식인들의 절대 철학으로 군림하는 한국에서 완전히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몇몇 근본주의자들의 존재 때문이다. 이를테면 다들 내 새끼한테 광우병 소고기 못 먹인다 아우성칠 때 “인간종이 다른 종을 대하는 자세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광우병은 차라리 인간종에게는 축복이 될지도 모른다.”라고 담담히 말한 현병호 형(민들레 발행인)이나, 모든 사람이 독도가 한국 것이네 일본 것이네 할 때, “독도는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 수많은 물고기와 파도의 것”이라고 일갈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드러낸 변홍철 형(녹색평론 편집장)이 그들이다.
며칠 전, 변홍철 형에게 고래 5주년도 되었으니 내내 미루어졌던 생태 꼭지를 제대로 한번 해보자고 전화를 해선 수락을 받아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나는 그가 보내놓은, 번복의 메일을 확인해야 했다. 몹시 아쉬웠지만, 그의 생각을 열렬히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럿이 읽고 곰곰이 생각해볼 만한 글이라, 허락을 받아 올린다.


다음호 잡지 편집이 한창이라 좀 분주하긴 합니다만, 아까 김 선생님과 통화한 뒤로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왠지 자꾸 '불편한'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냥 부담스럽다는 것과는 좀 다른 느낌인데.. 곰곰이 제 마음을 들여다보니, 조금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두서없지만 솔직히 털어놓고 이해를 구하는 게 여러 모로 낭비를 줄이는 길일 것 같아 서둘러 편지를 올립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제가 올해로 11년째 종사해온 <녹색평론>의 일을 그만두고 내년부터 경북 의성 직가골이라는'오지'에서 땅에 엎드려 일하는 법을 촌로들께 배워보자고 작정한 몇가지 이유 중 하나는 그동안 <녹색평론>을 통해서 이야기해온 가치들, 특히 '땅에 뿌리박은 삶'을 내가 몸으로 부딪쳐 살아보지 않고서는 어쩐지 더 이상 살아있는 '내 말', '내 생각' 같지 않다는 나름대로 '절박한' 문제의식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문제의식이 점점 커질수록, 글 쓰고 말하는 것은 물론이고 잡지를 기획하고 편집하는 일도, 또 가끔은 독자들을 만나 '편집자'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자꾸 불편해졌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고래>의 일을 맡아(이것도 역시 무언가를 '기획'해야 하는 일인데) 더구나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 고심해야 한다는 것은 지금 제 문제의식(이랄 것도 없고, 사실은 제 기분)에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서.. 아무래도 지금 이 일을 맡아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염치없지만, 제 아이들과 함께 조금 더 그냥 <고래>의 행복하고 게으른 '독자'로 있도록 해주십시오.

제가 고된 농사일의 몇 해 사이클이라도 근근이 견뎌낼 수 있다면, 그리고 경북 의성 직가골의 땅과 마을이 저를 그럭저럭 받아주기로 너그러움을 베푸신다면, 그때 제 나름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조금씩 들려줄 준비라도 시작해보겠습니다. 그 전에는 괜히 저도 불편하고, 아이들에게도 행복하지 못한 '공해'밖에 유발시키지 않을 거라는 불길한 생각이 강하게 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반드시 생태 이야기는 농사를 제대로 짓는 사람이라야만 할 수 있다는 '맹꽁이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것이 아니라는 것은 김 선생님도 이해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 말은 절대로 아니고, 다만 지금은 저의 마음이 흘러가면서 외치는 거기에 제 자신이 좀 더 겸손하게 복종하고 또 '집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 것뿐입니다.

사족을 붙이면, 제가 생각할 때에는<고래>의 그 기획은 어떤 개념이나 정보를 아이들에게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인상적이고 재미있는 일련의 풍부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것이어야 하는데 (그게 '에콜로지'의 또 하나의 중요한 측면이기도 하지요) 우선 그런 일에 저는 그다지 적합한 인사가 아니라는 생각도 이런 염치없는 말씀을 서둘러 드리게 되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죄송합니다. 제발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김 선생님과 막걸리 한잔 하고 싶은 생각은 변함이 없으니, 저도 참 뻔뻔스러운 놈이지요. <고래>와 선생님의 건강을 빕니다.

변홍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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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녹색평론>을 통해서 이야기해온 가치들, 특히 '땅에 뿌리박은 삶'을 내가 몸으로 부딪쳐 살아보지 않고서는 어쩐지 더 이상 살아있는 '내 말', '내 생각' 같지 않다는 나름대로 '절박한' 문제의식 때문이었습니다.



크리스천이 크리스천 답지 못한 요즈음의 근본적인 문제도 사실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절박한 문제 의식이 없다는 점...
나도, 나도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직접 몸으로 부딪쳐 살아가서 정말 '내 말', '내 생각'으로 만드는 삶을 살아가야지
말 뿐이 아니라, 진짜로 살아가는거


난 정말이지 아직 한참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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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온 우리 큰아빠
나 미국에서 기저귀차고 기어다닐 때부터 날 보아왔던 분
어깨에 팔을 걸치니까 이야 이거 위로 쳐다올려봐야되냐? 기분나쁘네 하면서 머리 쥐어박고.. 흐흐
20년쯤 뒤에 수인이나 하울이 같은 아이들 쳐다볼 때 이 기분을 알게 되겠지
몇 년 만에 뵙는 것 같은데
정정하시다
아직도 손이 두터운 것이 힘이 꽉 들어가 있고..
암만 그래도
내가 꽉 안으니까
깨져버린다 이녀석아..
흐흐


큰엄마랑 같이 내 양손을 꼭 잡고 기도해주셨다

그치

그래도 아직
사랑받는 하나님 아들이지
문득
새삼스러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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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뒤뜰에서 건국 60주년 기념 60일 연속 강의가 있었다 (이미 한 달 전 이야기다 -_-;; 내가 좀 바빠...)
건국 60주년... -_-; 이런 ㅄ 삽질에 대해서는 귀찮으니까 걍 넘어가자
책도 여러 권 내고 강연도 여기 저기 많이 다니는 공병호...
소문과 비평에 대해 여기 저기서 주워들은 것은 있지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직접 알아볼 기회는 없었다 (책 읽기는 시간 아깝고...)
공병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서 호기심에 없는 시간 쪼개서 찾아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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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시작 전에 짧막한 콘서트가 있더군
덕분에 잘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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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강연 시작
작은 체구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내는 타입인 듯하다
왠지 얼굴에서부터 '나 고대 상대 출신이오' 라고 써 붙인 듯한 포스랄까
내 의견은 접어두고 강연 내용만 정리해보겠다


공박사는 건국 60주년, 우리는 무엇을 성취했는가. 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운을 뗐다
세 가지로 이야기 하는데,

1. 빈곤에서 물질적 풍요를 이루어냈다
2. 개인의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일궈내고 민주주의를 이룩했다
3. 노력한 댓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권리를 만들어냈다

라고 이야기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것들을 어떻게 해서 성취할 수 있었는가?

1. 운이 좋았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좋은 체제를 선택했다. 독립 당시 수많은 제3세계 국가들이 사회주의체제를 선택했으나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선택해서 이루어낼 수 있었다.
2. 좋은 국제환경이 있었다. 냉전체제에서 우리는 미국을 이용해서 많은 도움을 얻어낼 수 있었다.
3. 1960년대부터 경제발전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시장중심국가경제를 이룩해냈다. 모 대통령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평가가 엇갈리지만 경제를 발전시킨 것만은 확실하다.
4. 대한민국 국민들은 근면하고 욕심이 많다. 이 것이 원동력이 되었다.

세 가지의 성취에 대해서 위와 같은 네 가지 근거를 댔다
그 다음으로 던져진 화두는 이것이었다

"미래의 한국은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

1. 좋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2. 각자 자기 위치에서 걸출한 인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두번째의 노력이 특히 지금의 청년들이 해야할 것인데, 이 것이 곧 미래인재로 연결이 된다

그렇다면, 미래 인재란 누구인가?
현재의 성과와 미래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공박사는 스스로 자신이 미래 인재의 조건에 부합한다고 이야기했다)

미래의 인재가 되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시대 변화에 발맞추어 계속해서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생산해낼 수 있는데, 이것이 궁극적인 인재상이다
이러한 인재는 은퇴나 해고의 불안 속에 살지 않으며 잘 살 수 있다
인간은 각성을 통해 역량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한계가 없음은 본인이 직접 경험한 바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으므로 주어진 자리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래 인재에게는 5가지 과제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자신의 현 주소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자가진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2.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지를 설정하는 것이다. 목표를 분명하게 정립하는 것도 중요하다
3.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내가 갖추어야 할 것을 파악해야 한다
4. 어떻게 자신을 개발해 나갈 것인가 알아야 한다
5. 노력해야한다

다음으로 미래 인재의 조건에 대해서 이야기 하도록 하겠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미래 인재의 조건은 10가지이다

1. 건강한 생각을 가져야 한다. 미래 인재는 주도적이어야 하고 자기주도적 삶의 방식을 가져야 한다. 긍정적인 마인드와 도전정신으로 무장하며 올바른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
2. 좋은 습관을 가져야 한다. 근면, 성실, 치밀, 치열함... 그리고 완벽 이상을 추구하는 습관, 위대함에 대한 욕망이 있어야 한다.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이 것들이다. "최고, 최선, 최상".
  건강과 관련된 습관도 매우 중요하다. 본인은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 이 것들은 건강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술과 담배도 제대로 컨트롤 못한다면 큰 사람이 될 수 없다

(여기부터는 시간이 부족해서 금방 금방 넘어갔다)

3. 문제해결능력이 있어야 한다
4. 문제를 찾고, 설정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5. 창의적 사고 능력이 있어야 한다. Be different.
6.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이 있어야 한다
7. 자기 혁신능력이 있어야 한다
8. 스스로 성취 동기를 부여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9. 21세기에는 세일즈 능력이 부각되고 있다
10. 외국어 구사능력, 리더십, co-work 능력이 중요하다

여러분들은 나이불문하고 모두 미래인재가 되길 바란다...



==========================

이상이 내가 객관적으로 기술한, 공병호 박사의 소위 "미래인재의 조건" 이라는 강의의 내용이었다

그 이후에 질의 응답 시간이 있었는데, 첫 질문에서 한 고등학생이 물었다
"박사님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자기 계발에 대해 중요한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요, 사회 복지와 남을 위한 봉사에 대해서는 의견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이에, 공박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다른 사람을 돕는 것도 일단 내 여유가 있어야 돕는 것이다. 본인이 일단 성공하고 돕든가 해야 한다. 그래야 영향력도 있고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 그리고 나 같은 경우에는 일단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다. 세금이 다 그런데에 쓰이는 것이다. 그리고 기부도 여기 저기 하고 있다."

========================

이 강의를 듣고 공병호 박사에 대한 나의 생각은 어느 정도 명확해졌다
(음,, 이념의 잣대로 그를 평가할 생각은 별로 없다)

일단 그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나를 만족시켜주는 데에 실패했다
너무나도 진부한 말들로, 지구는 둥그니까 계속해서 걷다보면 언젠가 처음 자리로 돌아오게 될꺼야. 라는 식의 말만 빙 둘러서 하고 있다
그는 아직 20세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기업과 인재들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 힘쓰는 21세기의 새로운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초반에 서술되었던 그의 역사관도 균형잡힌 시각이 전무하다는 데에 있어서 아쉬운 부분이 많다
그도 사람이니 더 발전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이 한 번의 강의로 인해 지금까지의 공병호의 사상이 어떠했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꽤나 비호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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