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 않은자, 모두 유죄

노희경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땐 더더욱이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 같고,
계절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말자.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올가미를 쓸 수도 있다.
가볍게 하자, 가볍게.

"보고는 싶지"라고 말하고,
"지금은 사랑해"라고 말하고,
"변할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상대와 내게 주입시키자.
그래서 헤어질 땐 울고불고 말고 깔끔하게, 안녕.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것이 상처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는 일이라고 진정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
너, 그리 살어 정말 행복하느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잔과 같았다.

내가 아는 한 여자,
그 여잔 매번 사랑할 때마다 목숨을 걸었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온통 그에게 내어주고,
그 다음엔 웃음을 미래를 몸을 정신을 주었다.

나는 무모하다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모든 걸 내어주고 어찌 버틸까,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다 주고도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나보다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2008/04/15 21:07 2008/04/15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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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17 00:2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이 글 보면 언제나 쿵하고 가슴이 내려앉어...근데 상담학관점에서 보면 노희경은회피성 성격장애 경향이 있고 그녀가 아는 한 여자는 의존성 성격장애 경향이야..ㅋㅋ 둘다 건강하지 않지 결혼한 사이가 아니라면 충분한 신뢰를 하되 그 사람을 완전히 믿지는 않아야 하는 것 같아 어렵다 크크크

  2. 달걀 2008/04/22 22:1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그치만 재고 따지고 안하고 나를 와락 다 준다는 건 좋은 일 같아
    늘 그러지 못하고 주저주저하고 놓친 걸 아쉬워하기보다는 끝이야 어쨌든간에
    냅다 맡겨보는 건 주님을 따르는 데 있어서도 필요한 거 같고 ...

    아 졸려

    안녕~~ 은광이는 잘 지내십니까?! ㅎㅎ

    • BlogIcon jooddang 2008/04/24 20:07  address  modify / delete

      ㅎㅎㅎ 너는 많이 좋아할꺼 같다.
      은광이는 잘 지내고는 있는데 넘쳐나는 숙제들로 정신이 없군하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