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래도 생일날 있었던 파티도 즐거웠지만 그보다 다음날 혼자 한적하게 에펠 타워 근처에서 좋은 글을 읽으며 보냈던 시간이 더 편했다.
사람 천성이라는게 바뀌지 않나 보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한가로운 오후와 저녁 때를 보내면서 지금 내가 향유하는 이 시간과 공간과 느낌은 카메라로 담지 못하겠다는 걸 느꼈다.
그러다보니 혼자라는게 조금 외로웠다.
이 시간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을 뻔했다.
파티에서의 댄스 파트너도 좋지만 정서적으로 감정을 공유하고 같은 카페에서 서로 책을 읽으며 말 없이 있어도 편한 사람이 좋다.
**
지휘봉을 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찬란한 존재다. 그러나 토스카니니 같은 지휘자 밑에서 플루트를 분다는 것은 또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다 지휘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다 콘서트 마스터가 될 수도 없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와 같이 하모니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체에 있어서는 멤버가 된다는 것만도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각자의 맡은바 기능이 전체 효과에 종합적으로 기여된다는 것은 의의 깊은 일이다. 서로 없어서는 안 된다는 신뢰감이 거기에 있고, 칭찬이거나 혹평이거나 '내'가 아니요 '우리'가 받는다는 것은 마음 든든한 일이다. 자기의 악기가 연주하는 부분이 얼마 아니 된다 하더라도, 그리고 독주하는 부분이 없다 하더라도, 그리 서운할 것은 없다. 남의 파트가 연주되는 동안 기다리고 있는 것도 무음의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읽으면서 참 아름다운 글이라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향기가 글에서 피어올라오는 듯했다.
그와 동시에 두려운 마음이 엄습했다. 이것은 패자를 위한 자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내면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니 그 안에 내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의 원천이 보였다. 그것은 인정받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것은 내가 줄곧 가지고 살아왔던 두려움의 가장 밑바닥인 것 같았다.
인정받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 될 것만 같은 두려움.
어떻게 살든지 간에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가득하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진짜 실패는 무엇인가.
문득, 내가 앞으로 이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내 인생은 그것으로 실패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서야 나의 두려움을 좀 더 솔직하게 발견하였으나, 아직도 그것을 직시하기가 힘들다.
그것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으며 젊은 날에 내가 극복하고 나아가야 할 대상이다.
그 과정에서 힘든 것은, 내가 그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이다.
사르트르는 실존에 대해 이야기할 때, 괴로운 것은 나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어떤 상황을 겪거나 어떤 행동을 할 때, 가장 괴롭고 힘든 순간을 경험할 때 조차, 그러한 나의 모습을 관조하고 있다.
내 안의 또다른 내가 있어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나를 바라볼 때, 나 혼자서는 스스로를 바라볼 수 없다.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서만 스스로를 비추어볼 수 있다.
모순이다....
내가 나 스스로를 인식하고,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지켜보고 있는 순간에서 나는 단 한 순간도 나 스스로에게 솔직할 수가 없다.
타인의 시선, 그 것도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있는 나의 시선을 의식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이 평생토록 지속될 것이기에, 나는 단 한 순간도 나 스스로에게 진실될 수 없을 것이다.
나를 의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허영심을 극복한다는 것 그 자체가 모순이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말했다. '지옥... 그건 타인들이야.'
vanity... 내 인생을 관통할 화두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