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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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들은 '우리가 금식을 하는데 왜 주께서는 보시지 않습니까? 우리가 통회하며 괴로워하는데 왜 주께서는 모른 체 하십니까?' 라고 말한다. 그러나 보라. 금식하는 날에 너희는 너희가 즐겨하는 일을 하고 있고 너희가 부리는 일꾼들을 혹사시키고 있구나.
4 보라. 너희는 싸우고 다투면서 금식을 하고 못된 주먹질까지 하면서 금식을 하는구나. 너희의 목소리가 높은 곳에 들리게 하려면 차라리 오늘 같은 날에는 금식을 하지 말라.
5 이것이 내가 받고 싶은 금식, 사람이 통회하며 괴로워하는 날이란 말이냐? 그저 갈대처럼 고개를 숙이기만 하고 굵은 베옷과 재를 펴쳐 놓는 것뿐이 아니냐? 이것이 너희가 금식이라고 부르는 것이냐? 이것이 너희가 여호와께서 기꺼이 받으실 만한 날이라고 부르는 것이냐?
6 내가 받고 싶은 금식은 이런 것들이 아니냐? 부당하게 묶인 사슬을 끌러 주고 멍에의 줄을 풀어 주는 것, 압제받는 사람을 자유롭게 놓아주고 모든 멍에를 부숴 버리는 것이 아니냐?
7 너희가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나눠 주고 가난한 노숙자를 집에 맞아들이는 것이 아니냐? 헐벗은 사람을 보면 옷을 입혀 주고 네 혈육을 못 본 체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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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네가 굶주린 사람에게 열정을 쏟고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준다면, 네 빛이 어둠 가운데 떠올라서 네 어둠이 대낮처럼 밝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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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큐티 본문인데, 이 말씀이 상당히 재미있게 다가온 것은 이 것이다
일반적으로 경건생활이라 함은,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고 금식을 하며 하나님과의 1:1 관계를 더욱 깊이 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제와 봉사와 나눔과 교제와는 조금 다른 영역이라고 분리해서 생각하기 마련인데,
주님은 이미 구약 시대 때부터 이런 개념이 틀렸다고 이야기한다
수직적인 관계와 수평적인 관계가 따로 분리되어서 생각되어지는 요즘과 같은 사고 방식이 비정상이라고 생각된다
십자가의 가로가 곧 세로이고 세로가 곧 가로라는 의미일까
아직도 사실 깊이 이해는 못하겠지만 약간의 감만 온다
주님은, 어떻게 네 형제와 싸우면서, 이웃을 돌보지도 않으면서 니가 경건 생활을 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신다
하나님이 받고 싶은 금식은 부당하게 묶인 사슬을 끌러 주고 압제 받는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구약시대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니 좀 파격적인 느낌이다
주님의 사랑은, 주님의 시선은, 어디를 향해 있는가
구약 시대 때부터, 예수의 행적에서부터, 일관되지 않는가
이런 말씀을 볼 때마다 피가 끓는다
내가 살아가야 할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할지 그림이 조금씩 구체화 되는 느낌이다
아직 느리긴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20대의 절반을 지나면서 적어도 내 소명이 어디에 있는가 약간이나마 구체적으로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