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이 누군가에게는
새로 나오는 벤츠 S 클래스 사기가 좀 애매하다 싶은 느낌이고
리스가 이제 끝나서 내 명의로 두 세대 정도 차를 끌고 다니기엔 그만큼 세금 내기가 싫은 감도 있고
부동산을 좀 더 굴리기에 살짝 벅찬 감이 있는 정도의 말이다
내 돈 주고는 별로 먹기 싫은, 밥보다 더 비싼 만삼천원짜리 스무디를 마시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려니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또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하는데
마누라 차가 제네시스로 바뀌어 있더이다
얼마 전의 일이다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도대체가 세상이 역겹다
있는 사람들은 저런 말들을 하고 있고
없는 사람들은 저런 말들을 하고 싶어서 없는 돈 끌어 모아다가 자기 자식들 사교육에 매달 수백만원씩 쏟아 붇고
그나마도 없는 사람들은 절망과 체념과 푸념 속에 살아가며
정부는 경기부양이라는 기치 아래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조장한다
진짜 구역질이 난 것은 무엇이었냐면 난 그런 말을 들으며 어떻게든 그 사람들에게서 돈을 받아내야만 했던 상황이었다
결국은 더러운 돈과 나 자신에 대한 구역질이었다
한 젊은 부자가 예수에게 다가와 말한다. “선생님, 제가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는 부자에게 대답한다. “가진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세요.” 얼굴을 붉히며 되돌아가는 부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예수는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쉽습니다.” 예수의 말은 짐짓 지나치게 느껴진다. 모든 부자가 다 악랄하고 탐욕스럽기만 하진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 예수의 말은 지나침이 없다. 하느님 앞에선 누구든 차별 없이 귀하다. 빈부 격차는 그 자체로 악이다. 그런데 빈부 격차란 왜 생기는가? 고루 나눠 갖지 않기 때문에, 남보다 많이 가진 사람이 존재하기에 생긴다. 하느님 앞에서 부자는 ‘가난한 사람이 존재하는 한’ 죄인인 것이다.
김규항 선생의 글의 일부이다
그래도 정상적으로 끼니 거르지 않으며 문화 생활을 즐기며 살고 싶은 정도의 부자가 되고 싶은 내 마음에 부담이 된다
이 역겨움을 잊고 싶지 않다
어느 순간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