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민은행과 사회적 기업에 대하여
'가난 없는 세상을 위하여 (Creating a World Without Poverty)'를 읽고
책에 나와있는 문구를 그대로 옮긴 문장도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빈곤은 평화에의 위협입니다
2006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 무하마드 유누스가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한 유명한 말이다. 빈곤이 어떻게 평화에의 위협이 될까? 세계의 소득분배 현황에서 그 시사점을 찾아볼 수 있다. 전세계 소득의 94%가 세계 인구의 40%에게 돌아가고 나머지 6%만으로 60%가 살아가고 있다. 세계 인구의 절반은 하루 2달러의 돈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그 중 10억 명 이상이 하루에 1달러 미만으로 연명한다. 역으로 물어본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인권이란 것이 존재하고 평화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수많은 범법행위와 테러행위가 가난에 기인한다. 이 말이 마음에 잘 와 닿지 않는 이유는, 적어도 이 포스팅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전세계 소득의 94%를 소비하는 사람에 속하기 때문이다.
무하마드 유누스는 최빈국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 태생이다. 그는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다가 고국으로 돌아와 가난에 허덕이는 자국민들을 보고 가만 있을 수가 없어서 조그맣게 돕기 시작하다가 1983년 그라민 은행을 세우며 마이크로크레딧을 통해 본격적으로 빈곤 퇴치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그의 조그만 실험으로 시작했던 이 운동은 20여 년이 지난 현재 마이크로크레딧 혁명을 일으키며 큰 성공을 거두며 시스템도 계속해서 발전해나가고 있다. 전세계적 마이크로크레딧 서밋을 개최하며 1억 가구 이상의 빈곤층 가정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며, 그라민 은행과 5년 이상 거래한 고객들 중 64%가 빈곤선에서 벗어났다. 이 때 빈곤선의 기준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유누스는 왜 빈곤층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그는 말한다. 빈곤에 둘러싸여 있어서 그것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 있었다고. 그는 귀국 후 열심히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을 보았고, 그 이유가 고리대금업을 하는 사채꾼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42명의 채무자가 고작 27달러가 채 안 되는 돈 때문에 묶여있었단 것이다. 그는 자신의 돈으로 그 빚을 갚아주었다. 흔히 빈민 구제에는 수십억의 돈이 필요하다고 믿는데 비해 그 40여 명의 사람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적은 돈으로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났다. 이 것이 유누스가 마이크로크레딧 운동을 시작하고 그라민 은행을 설립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은행은 신용이 없는 사람에게는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수입이 없는 학생은 신용카드를 만들 수 없고, 신용카드의 한도를 늘리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심사절차가 필요하다. 돈을 빌리려면 담보가 있거나 안정적인 수입원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한 마디로 돈을 빌려주면 갚을 수 있는지 꼼꼼하게 체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담보할 것도 없고 돈도 없는 빈곤층에게 은행은 무엇일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관계 없는 기관일 뿐이다.
마이크로크레딧이란, 이른 바 '신용'이 없는 빈곤층에게 무담보로 소액의 돈을 대출해주는 금융서비스를 말한다. 대출자들은 이 소액의 돈으로 생계를 위한 활동을 한다. 재료를 사서 손재주로 물건을 만들기도 하고 조그만 사업을 하는 등의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기 위한 일을 해가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라민은행이 절대적으로 빈곤한 그 대출자들로부터 99% 이상의 자금 회수율을 보였다는 점이다. 대출자들은 각자 그 돈으로 어떻게든 생계를 꾸려나가는 활동을 해서 돈을 벌고 대출한 돈을 갚았고 그렇게 그라민의 첫 실험은 성공을 거두었다. 현재 그라민은행은 700만 명이 넘는 빈곤층에게 돈을 빌려주는데, 그 중 97%는 여성이다. 이 성공은 가히 혁명적인 것이다. 이것은 대출을 받으려면 반드시 담보가 있어야 한다는 전통적인 믿음에 대한 거부이다.
유누스는 그라민은행의 마이크로크레딧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빈곤층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을 이미 알고 있다. 단지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들을 교육 대상이 아닌, 자립적인 경제 단위로 보는 발상의 전환이 중요하다. 그들이 역량을 발휘할 여건을 마련해주면 그들은 창의성을 발휘하여 어떻게든 살아남게 된다. 빈곤층에게 적선이나 지원금이 아닌, 다시 갚아야 하는 대출금을 제공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은 '사회적 기업'이다. 기본적인 개념은 이것이다. 사회적 기업 일반적인 기업과 같이 영리 활동을 하는데, 빈곤층에게 사회적 혜택을 제공하는 사업을 하는 기업이다. 이 회사의 투자자들은 기업의 영리활동을 통해 투자원금 회수한다. 하지만 그 이후의 회사의 초과 수익금은 투자자에 대한 배당금으로 돌아가지 않고, 사회의 공익을 위해 재투자 되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을 수 있는데, 첫째는 빈곤층에게 사회적 혜택을 제공하는 사업을 하는 기업이 있을 수 있고, 둘째는 사업 영역이 빈곤층을 향하지는 않지만 지분을 빈곤층이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기업이 있을 수 있다. 생각해보면 간단한 개념인데, 이 간단한 개념이 사회를 크게 바꿀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세계적으로 부호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수억 원씩, 수십억 원씩 기부를 한다. 이렇게 해서 운영되는 재단은 기부금이 없으면 돌아갈 수가 없고, 돈이 다 떨어지면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다. 그리고 자금이 투명하게 혹은 기업보다 효율적으로 쓰이지 않는다는 단점들도 있다. 게다가 돈을 다 쓰면 끝이다.
하지만 사회적 기업은 그렇지 않다. 사회적 기업에 투자를 하면, 기업은 영리 활동을 통해 자생력을 갖게 되고 투자자는 투자한 원금을 회수하게 된다. 이 돈은 또 다른 사회 공익을 위한 사업을 하는 사회적 기업을 세우는데 투자할 수 있는 것이다. 수백억 원씩 기부를 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다면, '투자'를 하는 덜 미친 사람들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천박한 자본주의가 판치는 세상에 현실성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아이디어는 기업가가 영리만을 추구하는 1차원적 인간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다면적인 존재이며,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보다 낫게 만드는 데에도 관심을 갖고 일을 할 수 있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의가 있는 젊은이들은 이런 곳에 도전할 동기가 충분하다.
그라민은행과 마이크로크레딧, 그리고 사회적기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은 이 세계에서 빈곤이라는 질병을 퇴치하자는 데에 있다. 그 옛날 페스트라는 질병이 유럽을 휩쓸며 수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이제는 사라진 병이 된 것 같이, 빈곤이라는 질병이 온 세계를 휩쓸고 있지만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하자는 것이다. 빈곤은 자연적으로 빈곤층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조성된 것이다. 그렇기에 빈곤을 없애는 일 또한 인간들이 신경을 쓰고 힘을 쓸 때 가능해진다.
나는 이러한 유누스의 생각이 전적으로 동의하고 나도 이 흐름에 작은 힘을 보태고 싶다. 빈곤층에 대한 관심과 제도적 정비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국가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사회적 기업이란 모델을 통해서 접근하여 보다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에도 이러한 모델이 많이 알려지고 정착되면 보다 많은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기대된다.
빈곤을 박물관으로.
그의 또 다른 캐치 프레이즈이다. 이 세상에 빈곤의 종말이 오기를 힘쓰고 또한 기대한다.